나무들의 시간 The Time of Trees
Concept
無 · 常 · 循 · 環 · 生 · 成 · 消 · 滅
無常 무상 Impermanence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여 고정됨이 없음
循環 순환 Circulation
자연의 흐름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과정
生成 생성 Creation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고 자라남
消滅 소멸 Extinction
생명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감
無 없을 무 · 常 항상 상 · 循 돌 순 · 環 고리 환 · 生 날 생 · 成 이룰 성 · 消 사라질 소 · 滅 멸할 멸
無 Nothingness · 常 Continuity · 循 Circulation · 環 Cycle · 生 Birth · 成 Formation · 消 Disappearance · 滅 Extinction



















































































































Note
한강을 따라 이어진 자전거길 옆을 걷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식재된 어린 튤립나무들이 걷는 속도에 맞춰 하나씩 시야에 들어왔다. 그 정돈된 풍경 틈에서 느닷없이 커다란 토종 보리수나무 한 그루를 마주했다. 엇박자처럼 불협화음을 낼 것 같던 보리수나무는 튤립나무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세월을 품은 어머니 같은 보리수나무와 이제 막 성장해 가는 아들 같은 튤립나무. 종도 수령도 다르지만 한 공간에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을 보며, 이 두 나무가 겪어낼 시간을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흐르며 튤립나무는 늠름하게 자라났지만, 보리수나무는 점차 쇠약해졌다. 결국 2022년 가을, 보리수나무는 가지가 모두 꺾여 쓰러졌고 이듬해 겨울에는 밑동만 남긴 채 완전히 잘려 나갔다. 든든한 존재가 사라진 프레임 속, 비어버린 왼쪽 공간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홀로 남은 튤립나무가 소리 내어 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길 위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수명을 다한 줄 알았던 보리수나무는 아직 땅속에 뿌리를 뻗고 있었다. 베어진 밑동에서 다시 새로운 줄기와 잎이 돋아나 제법 굵어지더니, 기어코 새로운 꽃까지 피워냈다. 그러나 그 끈질긴 생명력의 증명도 잠시, 공원 관리를 이유로 잡초와 함께 새 줄기마저 무참히 잘려 나가며 보리수나무는 두 번째 시련을 맞았다.
이 좁은 카메라 프레임 안에는 두 나무 말고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또 다른 식물이 있다. 두 나무의 발치에 나지막하게 다듬어져 울타리처럼 길게 늘어선 조팝나무다. 해마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줄기마다 작은 흰 꽃이 빽빽하게 피어난다. 새 학기에 아이들이 줄을 선 것처럼 작은 꽃들이 세로로 줄지어 핀 모양은 동물의 꼬리 같기도 하고, 하얀 좁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팝나무의 개화를 시작으로 늦가을까지 예쁜 들꽃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그 배경 속에서 매년 튤립나무는 몸집을 키웠고, 수많은 꽃이 피고 졌다.
우주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여 고정됨이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이치와 생명의 순환을, 길섶의 식물들은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발원지에서부터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은 채 바다로 나아가는 강심수(江心水)처럼, 거대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할 뿐이다. 다시 베어진 보리수나무의 밑동을 가만히 바라보며, 평범하고도 척박한 길 위에서 묵묵히 피고 지는 모든 생명에 감탄한다.
Info
백합나무(튤립나무)
북미가 원산지인 백합나무는 꽃 모양이 튤립을 닮아 튤립나무로도 불린다. 병충해에 강하고 목재로서의 활용도가 높아 조경수로 인기가 많으며, 수분을 많이 저장하고 있어 방화수로도 심어진다. 특히 탄소 저감 능력이 우수하여 수령 30년생 1그루당 연평균 6.8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는 소나무 4.2톤, 낙엽송 4.1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성장 속도 역시 타 수종보다 빨라 36미터까지 자란다. 해당 장소의 나무들은 산림과학연구소 김외정 박사가 구리시에 기증한 2,000주 중 구리한강시민공원에 식재된 900주에 속한다.
토종 보리수나무
뽕나무과 활엽수로 높이는 2에서 3미터 정도 자란다. 5월 초에 연한 노란빛의 꽃이 피며 진한 향기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지에 서식하며 약초로도 쓰여 소화불량, 설사, 기침 등에 사용된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진 인도의 보리수나무 각수, 사유수 와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종이다.
조팝나무
우리나라 어디서나 자생하는 식물로 높이는 평균 1~2m가량 자란다. 4월에 하얀색 꽃이 피고 꽃 모양이 좁쌀 같아서 조팝나무로 부른다. 약초로도 쓰이며 해열 및 진통제로 사용되고 한국, 중국, 대만 등지에서 서식한다.
촬영 기록
2018년 3월 8일: 첫 촬영 시작
2022년 9월 24일: 보리수나무 쓰러짐
2023년 1월 20일: 보리수나무 잘라냄 (뿌리는 살아있음)
2025년 5월 26일: 백합나무(튤립나무) 처음으로 꽃을 개화
매년 봄 조팝나무의 하얀색 꽃을 시작으로 늦가을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들꽃이 피고 짐.
지점 촬영 좌표
37.567716, 127.122603
諸行無常 제행무상
모든 우주 만물은 늘 변하여 한가지 모습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강물이 계속해서 흐르는 것처럼 만물은 무한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여 대립하고 다시 소생하여 융화되어 간다.
역사적 배경
촬영 지점은 삼국시대의 주요 요충지이자 격전지였던 아차산을 등지고, 건너편 암사동 선사 유적지를 바라보는 곳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발견된 암사동 유적은 신석기시대 한강 유역 최초의 거주지로, 수렵과 채집을 하며 빗살무늬토기를 만드는 등 인류 공동체 사회와 문화 예술의 초석을 이룬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