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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 Intervention

Concept

渚 · 柱 · 介 · 入 · 開 · 發

渚 물가 Riverbank
강과 땅이 맞닿아 자연의 경계가 이루어지는 곳

柱 기둥 Bridge Pier
강물 위에 세워져 무게를 지탱하는 인공의 토대

介入 개입 Intervention
자연의 흐름 속으로 인간의 구조가 들어온 상태

開發 개발 Urban Development
자연의 공간을 바꾸어 인간의 도시가 확장되는 과정

渚 물가 저 · 柱 기둥 주 · 介 끼일 개 · 入 들 입 · 開 열 개 · 發 필 발

渚 Riverbank · 柱 Pier · 介 Insertion · 入 Entry · 開 Opening · 發 Development

Note

무엇보다도 한강은 금빛 모래의 강이었다. 19세기 말 조선을 여행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강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천국의 향기’에 비유했다. 넓게 펼쳐진 모래톱과 완만한 물길은 오랫동안 한강 풍경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강에서 그 금빛 모래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도시의 성장과 함께 강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강의 모래는 제방을 쌓고 도시를 확장하는 데 사용되었고, 강의 양안에는 콘크리트 둑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자연의 공간 위에 인간의 구조가 차례로 들어오면서, 강은 점차 도시의 구조 속으로 편입되었다.

처음 한강을 마주했을 때 나는 이곳을 거대한 ‘콘크리트 왕국’처럼 느꼈다. 강물 위에는 수많은 교량이 놓여 있고, 강변은 단단한 제방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흐르는 물 위로 무거운 시멘트 구조물이 강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어떤 이에게는 자연이 훼손된 풍경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산업화와 도시 발전의 상징처럼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개가 짙게 낀 한강 위에서 교각을 바라보게 되었다. 흐르는 물 위에 서 있는 콘크리트 기둥이 문득 고대 신전의 기둥처럼 보였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구조물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흐르는 것과 멈춰 있는 것 사이의 이질적인 대비가 묘한 긴장과 균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콘크리트 구조물은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하나의 ‘오브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여 만들어낸 이 구조물들은 필요에 의해 탄생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풍경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형태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물들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거대한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아름답던 모래톱은 사라졌고, 여울과 소(沼) 같은 자연의 물길도 대부분 정비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의 서식 환경도 함께 달라졌다. 그런데도 강은 멈추지 않는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어느 곳에서는 다시 모래가 쌓이며 작은 생명들이 자리를 잡는다.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서도 자연은 조용히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아파트 너머로 보이는 산의 능선, 교각 아래로 흐르는 물, 강가에 서 있는 나무와 그 위를 지나가는 새들까지. 이러한 장면들이 모여 지금의 한강 풍경을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낯선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생경하게만 보이던 구조물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간의 구조가 겹친 이 풍경은 단순한 도시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남긴 기록처럼 보였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과 그 사이를 지나가는 자연의 흐름을 함께 바라보며, 이 강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천천히 생각해 본다.

Info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1922)

‘무엇보다도 한강은 금빛 모래의 강이었다. 그 아름다움이란 천국의 향기와도 같았다.’
영국,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우리 인간이 대자연에 엄청난 도전을 하여, 인간의 의지로서 자연을 극복하고 개가를 올린 산 증거가 있습니다.’
대통령 박정희, 1972년 11월 25일 소양강댐 담수식 치사 중

‘우리는 성장과 개발을 위해 쉼 없는 박차를 가하는 한편 우리의 자연을 아름답게 가꾸는 노력도 이에 못지않게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대통령 전두환, 1982년 9월 28일 한강종합개발사업 기공식 치사 중

한강의 기적 그리고 한강변의 변화

한강의 기적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대한민국의 초고속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다. 한국전쟁으로 국토와 인력이 크게 손실된 폐허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이 이룩한 라인강의 기적처럼 눈부신 발전을 이루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라인강과 한강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라인강이 훌륭한 수로로서 물류와 산업 발전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한 반면 한강의 수로 기능은 상류의 댐 건설 등과 함께 사실상 단절되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이룩한 눈부신 성장은 한강의 물길 자체가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 한강변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 한강은 단순한 물리적 수로를 넘어 주변 공간의 획기적인 개발과 확장을 통해 경제 성장의 거대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이 한강변의 경관은 크게 두 번의 거대한 변화를 거쳐 형성되었다. 첫 번째는 1925년 대홍수다. 이 유례없는 대홍수로 인해 한강의 물길이 크게 바뀌었고 암사동 선사유적지 등 땅속에 잠들어 있던 문화유적들이 지표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한강 개발 사업이다. 1967년 시작된 제1차 한강개발과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시행된 제2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현재의 뼈대가 완성되었다. 한강 주변의 모래를 파내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여의도라는 거대한 도심을 개발하는 등 대대적인 공간 개간이 이루어졌다. 잠실의 종합경기장, 여의도의 마천루, 강변을 따라 조성된 콘크리트 제방과 수많은 시민 공원 그리고 강남과 강북을 잇는 거대한 교각들은 모두 이 시기 개발과 개입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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