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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하 (시든 연잎) Withered Lotus

Concept

敗 · 荷 · 反 · 影 · 輪 · 廻

敗荷 패하 Withered Lotus Leaf
시들어 마르거나 찢어진 연잎

反影 반영 Reflection
물에 비친 그림자

輪廻 윤회 Samsara / Cycle of Life
수레바퀴가 돌듯 끊임없이 돌고 도는 생명의 순환

敗 시들 패 · 荷 연 하 · 反 되돌릴 반 · 影 그림자 영 · 輪 바퀴 륜 · 廻 돌 회

敗 Decay · 荷 Lotus · 反 Reflection · 影 Shadow · 輪 Cycle · 廻 Revolve

Note

도심을 벗어나 한강 상류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콘크리트 제방이 사라지고 고즈넉한 자연의 품에 닿게 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수도 서울로 진입하는 마지막 관문이자 댐인 팔당. 철저히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관리되어 개발이 제한된 이곳 수변에는, 겨울이 되면 줄기만 남은 연잎들이 물 위에 고요히 서 있다. 여름 동안 수면을 가득 덮었던 넓은 잎과 화려한 꽃은 사라지고, 마른 줄기만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물결을 따라 흔들린다.

과거 한강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인 『택리지』를 비롯한 옛 문헌을 보면, 현재의 용산 일대인 ‘남호(南湖)’는 물결이 잔잔해 연꽃이 무성했고 고려시대에는 임금이 직접 꽃구경을 나설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도심의 연꽃 풍경은 대부분 사라졌고, 이제 그 흔적은 상류인 팔당 부근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도시 사람들의 식수를 맑게 정화하려는 듯 강물이 품어 키워내는 이 수변의 연꽃 군락은 사라진 옛 한강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아준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맑은 꽃을 피워내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예로부터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완숙한 여름의 아름다움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나는 겨울 강물 위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시든 연잎, 즉 패하(敗荷)가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미감에 마음이 끌린다. 시간이 지나 잎이 사라진 뒤에도 물 위에 남은 기하학적인 선들은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서로 부딪히며 작은 리듬을 만든다. 그것은 한 편의 간결한 시의 행 같기도 하고, 고요한 악보 위의 음표 같기도 하다. 나는 매년 겨울, 같은 장소를 찾아 서로 다른 빛과 배경 속에서 실재와 그림자가 겹쳐지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흑백 사진으로 기록하며 형태와 리듬을 강조해 오고 있다.

이 ‘패하’ 연작은 겨울의 시든 연잎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을 바라본 기록이다. 진흙에서 피어나 다시 흙과 물로 돌아가는 과정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향한 묵묵한 준비다. 물에 비친 반영 속에서 실재와 환영은 하나가 되고, 허물어진 식물의 흔적들은 조용히 진흙의 일부가 된다. 수면에 남겨진 흑백의 선과 그림자를 통해 사라지는 순간의 애틋함을 기록하는 동시에, 다음 계절을 잉태하는 자연의 시간과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Info

敗荷 패하
시든 연잎

野外新秋色
들 밖의 가을빛이 새로운데

蕭然上敗荷
쓸쓸하게 앞의 연꽃이 시드네

已收芳艷了
꽃다운 아름다움 이미 그치니

奈此苦心何
이 괴로운 마음을 어찌하나

尙有擎天柄
하늘을 받든 꽃자루 아직도 있고

猶餘蘸月波
달을 담근 물결도 그대로 남았네

誰將小絃管
누가 장차 작은 현과 피리로

爲我度悲歌
날 위해 슬픈 가락 읊어주려나

조선 후기 정약용(丁若鏞),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제5권 시문집(第一集第五卷詩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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