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1 Submergence1
Concept
循 · 環 · 生 · 成 · 消 · 滅 · 氾 · 濫
循環 순환 Circulation
자연의 흐름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과정
生成 생성 Creation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고 자라남
消滅 소멸 Extinction
생명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감
氾濫 범람 Flood
물이 넘쳐 경계를 벗어나는 현상
循 돌 순 · 環 고리 환 · 生 날 생 · 成 이룰 성 · 消 사라질 소 · 滅 멸할 멸 · 氾 넘칠 범 · 濫 넘칠 람
循 Circulation · 環 Cycle · 生 Birth · 成 Formation · 消 Disappearance · 滅 Extinction · 氾 Overflow · 濫 Flood


































Note
여름철 장마가 오면 한강 둔치는 어김없이 짙은 갈색 강물에 잠긴다. 나는 침수가 예상되는 특정 지점을 정해두고, 그곳이 물에 잠기고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과정을 관찰해 보고 싶었다.
강변 가장자리에 무성하게 자라난 식물들은 대부분 이름 모를 잡초들이다. 이들은 불어난 거센 흙탕물 속에 잠겨도 떠내려가지 않으려 뿌리로 땅을 꽉 잡고 버틴다. 유속이 줄고 물이 빠져나가면 갯벌처럼 변한 땅 위로 아수라장이 된 수해 현장이 드러난다. 뻘밭 속에서 식물들은 치열하게 회복을 시도하지만, 이내 가을이 오고 기온이 떨어지면 잎을 떨구며 겨울을 맞는다.
겨울을 견뎌낸 식물들은 다음 해 봄, 다시 새잎을 틔우며 풍성해질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 둔치의 잡초들은 한순간에 잘려 나갔다. 한강공원의 둔치 정비 작업으로 모두 베어진 것이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침수라는 거대한 교란 속에서도 살아가던 생명들은 피할 틈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침수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고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아무런 관여를 할 수 없었다.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채 견뎌내던 그 모습 앞에서 큰 상실감을 느꼈고, 한동안 그 장소에 발길을 끊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한 번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뒤,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모든 것이 끝났을 거라 생각했던 자리에는 어느새 다른 잡초들이 새롭게 자라나 꽃을 피우고, 곤충들이 날아들며 또 다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년 여름이면 이곳은 또다시 물에 잠기고 휩쓸려 수해의 현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다가올 피해를 미리 계산하지 않고 그저 현재의 척박한 땅 위에서 지금의 꽃을 피워낸다.
무참히 잘려 나가고 탁류에 휩쓸려도 다시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회복하는 이 지난한 과정은 우리의 삶과 깊이 닿아 있다. 둔치의 이 작은 공간을 지켜보며 기록하는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넘어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는다.
Info
역사에 기록된 한강의 대홍수
경진년대홍수(庚辰年大洪水)
連日大雨㳂江居民多被漂没
날마다 큰 비로 강가에 사는 백성이 많이 표몰(漂沒)당함.
중종실록 40권 (중종 15년, 7월10일)
1520년 경진년에 발생한 대홍수로 강북 뚝섬의 일부였던 잠실에 샛강이 흐르게 되어 잠실 일대는 섬으로 분리됐다. 원래 한강 본류는 남쪽의 송파강(松坡江) 이었고, 새로 생겨난 샛강은 신천(新川)으로 불렸다. 현재 송파강은 사라져 석촌호수 일대로 남았고, 신천은 한강 본류가 되었다.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
한강에 단 하나의 저수(貯水) 댐도 없던 시절 한강이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수마(水魔)였다.
동아일보 1925.07.18 기사
1925년 을축년에 일어난 네 차례의 큰 홍수로 7월 초순부터 9월 초순까지 발생한 집중 호우 피해로 연간 강수량의 80%를 기록했으며,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1억 300만원의 피해를 준 한강 유역에서 발생한 가장 큰 홍수로 기록되어 있다. 대홍수로 숭례문 앞까지 물이 찼으며, 용산역의 열차는 물에 잠겼고, 암사동과 미사리의 선사유적지와 백제의 풍납토성이 발견되었다.
치수(治水)와 한강의 변화
한강 개발 당시 치수(治水)를 위해 쌓은 제방은 홍수를 예방하는 데는 기여했으나, 강물 본연의 역동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모습은 상실되었다. 1980년대 이전 한강의 폭을 보면, 홍수기에는 강폭이 평균 2km, 최대 3.5km에 달했다. 잠실을 중심으로 보면 북쪽의 구의역 부근에서 남쪽의 석촌호수 남단까지 강물이 차올랐던 셈이다. 반면 갈수기에는 한강대교를 기준으로 노량진과 흑석동 쪽에 붙어 흐르는 50m 정도의 가느다란 물줄기만 남았고, 나머지는 광활한 백사장으로 드러나 있었다.
한강의 자연 하천 구조는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1980년대 한강 종합개발 이전에는 홍수기와 갈수기의 수위 차이가 매우 커서 넓은 모래사장과 범람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러한 역동적인 환경은 다양한 식생과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훌륭한 생태적 기반이 되었다. 하천 둔치의 식물들은 침수와 건조를 반복하는 극한의 환경에 적응한 종들로, 빠른 생장과 번식력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은 홍수나 인위적인 제초 작업 등 거대한 변화 이후에도 척박한 땅을 딛고 빠르게 회복하며 새로운 개체군을 형성하는 강인한 생태적 특성을 지닌다.
지금 한강은 종합개발 이후 제방과 수로가 정비되면서 홍수 조절 기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으나, 강의 자연스러운 범람과 지형 변화는 제한되었다. 이는 인간의 안전과 도시의 편리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강이 오랜 시간 지니고 있던 본래의 유동적인 변화 양상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