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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봉과 사장교 The Peak of Philosophy and cable-stayed bridges

Concept

無 · 常 · 恒 · 建 · 築 · 日

無常 무상 Impermanence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여 고정됨이 없음

恒常 항상 Constancy
언제나 변함없이 한결같은 상태

建築 건축 Construction
세우고 쌓아 올려 구조물을 만듦

日日 일일 Day by day
날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

無 없을 무 · 常 항상 상 · 恒 항상 항 · 建 세울 건 · 築 쌓을 축 · 日 날 일

無 Nothingness · 常 Continuity · 恒 Constancy · 建 Construction · 築 Formation · 日 Day

Note

과거 많은 사람이 강을 건너려면 여러 척의 배를 나란히 묶어 배다리를 만들어야 했다. 이 임시 교량은 당시 강을 건널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었고,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그 구조와 설치법을 이용해 다리를 놓았다. 그로부터 2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한강 동쪽 미음나루 언덕에 서서 강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에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학문을 닦았다고 전해지는 예봉산 자락의 철문봉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이 풍경에 매료되어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은 자리, 같은 구도로 변화를 관찰했다.

1년여가 흐른 어느 날, 내 프레임 안에서 우연히 다리 건설이 시작되었다. 조선 시대 실학자의 흔적이 남은 산봉우리와 21세기 최신 공법으로 건설되는 사장교가 하나의 풍경 속에 공존하는 묘한 대비를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다.

다리의 이름은 고덕토평대교. 한강의 33번째 교량이 건설되는 전 과정을 기록할 수 있었다. 거대한 자연의 산세 앞에서 쌍둥이처럼 두 개의 주탑이 솟아오르고, 그 사이로 사장교의 상판이 조금씩 자라나듯 뻗어 나갔다. 허공을 가르며 다가서던 거대한 구조물이 마침내 서로 맞닿아 이어지던 순간은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는 설화 속 오작교처럼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끊어져 있던 강의 양 끝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 순간을 바라보며,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다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다리가 완성되자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시간의 풍경이 사진으로 드러났다. 안개가 짙게 깔린 날이면 교량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텅 빈 공허함을 남겼고, 날이 개면 다시금 강렬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인간이 세운 굳건한 건축물은 끊임없이 변하는 대자연의 무상함 속에서도 변치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다리는 단순한 이동 통로를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변 환경과 끝없이 교감하는 거대한 유기체와 같았다.

2017년부터 완공 이후까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이 기록은 단순한 건설 과정을 넘어선다.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궤적이 하나의 풍경 속에서 만나고 변화해 가는 과정을 오랫동안 바라본 기록이다.

Info

배다리
여러 척의 배를 강 위에 일정 간격으로 묶고 그 위에 널판을 얹어 만든 임시 교량이다. 다리가 없던 시기에는 한강과 임진강 등에서 군사 이동이나 왕의 행차 시 널리 사용되었으며 정약용이 그 구조와 설치 방법을 이용하여 배다리를 놓았다.

한강철교
대한민국 최초의 한강 교량인 한강철교는 1900년에 완공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경인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 건설된 철도 교량으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근대 교량의 시작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한강을 건너는 수단은 나루터의 배나 배다리가 전부였다.

고덕토평대교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구리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2.04km의 한강 33번째 교량이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세종 포천 고속도로 구간의 일부로 주경간장 540m는 콘크리트 사장교 중 세계 최장 기록이다. 이 길이는 세종대왕의 54년 생애를 상징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철문봉(喆文峰)
높이 약 630m로 예봉산과 적갑산 사이에 있는 봉우리다. 조선 후기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들이 본가인 여유당에서 능선을 따라 이곳에 올라 학문의 도를 밝혔다 하여 지혜를 뜻하는 철(喆)과 학문을 뜻하는 문(文)을 합쳐 이름 지어졌다.

예봉산(禮峯山)
높이 약 683m로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 경계에 위치한다. 검단산과 마주 보며 그 사이로 한강이 흐른다. 정상에서는 서울로 진입하는 한강 유역의 장엄한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미호(渼湖)
현재 미음나루로 불리는 오래된 나루터로 고려시대 기록에도 등장한다. 한강과 왕숙천이 만나는 지점 근처에 있어 예로부터 수운 교통의 거점 역할을 했으며 뛰어난 경치로 널리 알려졌다.

정약용(丁若鏞)과 열수(洌水)
조선 후기 실학자로 다산이라는 호로 잘 알려진 정약용은 말년에 한강을 뜻하는 열수라는 호를 사용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근처에서 태어난 그는 긴 유배 생활을 마친 뒤 여유당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여생을 보냈다.

九里松前一笠亭
濛濛煙水繞雲屛
水南瞑色渾如海
柔櫓伊鴉尙可聽

구리의 소나무 앞 삿갓 정자 하나
짙은 안개 낀 강에 구름이 병풍처럼 둘렀네
강물 남쪽 어두워 온통 바다 같은데
조용하게 노를 젓거늘 까마귀 소리 들을 만하네

조선 후기 정약용(丁若鏞), 열초(洌樵), 우경산수도(雨景山水圖)

현재 아카이브 하고 있는 고덕토평대교 일대를 묘사한 시문이다.

촬영 기간 : 2017~현재
촬영 시작 : 2017년 5월 22일 월요일 오전 5시
작업량 : 1,200컷
최초 파일 번호 : 05222017__MG_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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